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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예술에서 '나'를 세우다, 가브리엘레 뮌터 인간에 대한 존중 없이 진정한 초상화는 불가능하다 가브리엘레 뮌터 Gabriele MÜNTER 1877~1862 칸딘스키와의 만남, 독일 여성 화가의 탄생 가브리엘레 뮌터의 부모님은 아메리칸드림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독일에서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가 치과와 상점을 운영하며 큰 돈을 모았습니다. 미국에서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자리를 잡았지만 미국 남북전쟁이 터지자 1864년 고향 독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이러한 개척적인 삶을 살아온 뮌터의 부모님들은 당시 유럽의 여성들에게 보수적인 사회분위기와 달리 뮌터를 남녀 구별없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키웁니다. 뮌터는 당시 여성에게 흔치 않던 자전거를 즐겨 탓으며, 여성이 공식적으로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없던 시절 개인 교습을 통해 미술을 배워나갔습니다. 뮌터가.. 2022. 11. 10.
진정한 사랑을 꿈꾸는 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 우리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은 바로 사랑의 색깔이다 마르크 샤갈 Marc Chagall 1887~1985 마르크 샤갈의 탄생 마르크 샤갈은 러시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유대인 거주 지역 게토(Ghetto)에 살며 차별과 핍박을 받아왔습니다. 유대인 거주지의 교육은 낙후되어 있었으며 취업, 토지 소유 등은 제한될 뿐만 아니라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상업, 수공업 등 한정적인 직업만 가질 수 있도록 정해져있었습니다. 19살이 될 무렵 화가의 꿈을 꾸던 샤갈은 고향 비테프스크를 등지고 샹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합니다. 당시 유대인이 러시아의 수도인 샹트페테르부르크에 머물려면 체류 허가증이 필요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도망치듯 고향을 떠난 그가 체류 허가증이 있을리 만무 했지만, 다행.. 2022. 11. 9.
색으로 숭고미를 담은 화가, 마크 로스코 나는 추상주의 화가가 아니다. 나는 그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마크 로스코 1903~1970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가 되기까지 마크 로스코는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유럽에서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팽배해 지고 있을 때 이를 피해 온 가족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이 때 로스코는 아홉 살이었습니다. 마크 로스코는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스코는 학업에 뛰어나 예일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였지만 명문 대학 안에 엘리트주의와 인종차별주의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퇴하게 됩니다. 직장을 찾기위해 뉴욕을 방문했다가 그림을 그리는 친구 집에 들르게 되고, 그 때 운명처럼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단으로 ‘그림’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유럽 입체주의 회화들을 접하면.. 2022. 11. 9.
잔인한 인생을 그림으로 승화시킨, 프리다 칼로 나의 평생 소원은 단 세가지, 디에고와 함께 사는것,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 프리다 칼로 1907~1954 고난의 상징과도 같은 그녀의 인생 프리다 칼로의 인생은 교통사고, 여러 번의 수술, 남편의 바람기, 그렇지만 계속 된 남편에 대한 애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프리다는 당시 유명 화가였던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했지만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활이었습니다. 프리다는 그림을 통해 그녀의 몸과 마음의 고통을 화려하게 표현하였고, 20세기 후반, 21세기 초반에는 남편 디에고보다 칼로의 작품이 훨씬 더 주목받게 됩니다. 전통적인 수채화부터 초현실주의 그림까지 그녀의 고향인 멕시코의 전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평생에 걸쳐 200여 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운명과도 같았던 그림 프리다 칼로는 1.. 2022. 11. 8.
프랑스 로코코 미술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화가, 프랑수아 부셰 프랑수아 부셰 1703~1770 유럽 전역에 '프랑스풍'을 전파시킨 화가 프랑스의 화가 프랑수아 부셰는 화가인 아버지, 역사화가 르무안느(Lemoyne)와 베르네제의 지도를 받아 그림을 배웠습니다. 1723년에 아카데미의 로마상에 도전, 수상하게 되어 포상으로 이탈리아 유학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1727~1731년 5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베르사유궁 왕비의 방, 오텔 드 수비즈 살롱의 장식등을 도맡아 작업하는 등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특히 퐁파두르 부인의 적극적인 지지로 벽화, 회화뿐만 아니라 타피스트리 밑그림도 상당히 많이 그리며 프랑스 로코코 시대의 대표적인 작가가 되었습니다. 로코코는 조약돌을 뜻하는 프랑스어 ‘로카이유(rocaille)’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 2022. 11. 8.
지중해의 빛을 눈부시게 담아낸 화가, 호아킨 소로야 늘 바라왔던 대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빛 속에서... 호아킨 소로야 Joaquin Sorolla 1863-1923 스페인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 호아킨 소로야는 태양의 도시,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2세의 어린 나이에 전염병으로 부모를 여읜 뒤 이모 집에서 성장했습니다. 자신과 동생을 키워준 이모부가 금속 공예가여서 어릴때부터 그림을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열다섯 살에 발렌시아에 있는 산카를로스왕립미술아카데미를 다녔으며, 미술공부를 위해 마드리드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를 비롯한 많은 거장들의 그림을 모작하면서 실력을 쌓아나갔고, 다양한 작품들을 공부하면서 자신만의 화법을 구축해 나갔습니다. 그 와중에 소로야는 유명 사진 작가 안토니오 가르시아의 일을 도우.. 2022. 11. 7.
황홀한 색채의 마술사, 마리 로랑생 나를 열광시키는 것은 오직 그림이며, 그림만이 영원히 나를 괴롭히는 진정한 가치이다. 마리 로랑생 Marie Laurencin 1883~1956 몽마르트르의 뮤즈이자 세탁선(Bateau Lavoir)의 멤버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 중 한 명인 마리 로랑생은 국회의원의 숨겨진 딸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힘들게 자랐습니다. 18세에 도자기로 유명한 도시 세브르로 내려가 도자기 그림 기법 학교를 다녔고, 파리로 돌아와 유화에 관심을 가지며 화가의 꿈을 꾸게 됩니다. 곧 입체파의 창시자인 조르주 브라크의 눈에 들어 피카소, 모딜리아니, 장콕토, 루소 등과 교류하게 되었고, 그들의 멤버로 인정받아 1905년 당시 화가들의 공동 작업실이었던 몽마르트르의 아틀리에 ‘세탁선(Bateau Lavoir)’에서 활동.. 2022.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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