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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X 스캔들, 존 싱어 사전트 나는 그저 그녀의 모습대로 그렸을 뿐 John Singer Sargent 1865~1925 미국 출신의 영국 인상파 화가 사전트는 외과의사 아버지, 아마추어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평생을 풍족하게 살았습니다. 미국 화가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미국인 부모 밑에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며 생애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냈습니다. 사전트는 유럽 각국을 여행하며 문화적, 예술적 견문을 넓혀 나갔습니다. 파리의 공립 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 Ecole des Beaux-Arts에 입학하였고, 파리에서 당시 유명한 초상화가였던 에밀 오귀스트 카롤뤼 뒤랑에게 개인교습을 받았습니다. 모네가 살고 있는 지베르니Giverny에도 여러 번 방문하며 인상주의 화풍을 깊게 연구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전트는 스페인으로.. 2022. 11. 13.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으로 이국적인 세상을 그려낸, 앙리 루소 이국의 낯선 식물을 볼 때면 나는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앙리 루소 Henri Rousseau 1844-1910 일요 작가에서 정식 화가가 되기까지 앙리 루소는 파리 교외에서 세관 관리로 일하며 여가 시간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전문적인 화가가 되기 위한 교육은 받지 않았으며 정확한 소묘나 인상주의의 기법등은 전혀 모른 채 그리고 싶은 것을 솔직히 표현하였습니다. 루소처럼 본업이 따로 있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아마추어 화가를 '일요 작가'라고 합니다. 루소와 같은 일요 작가 (Sunday Painter)들은 표현주의나 입체주의처럼 당시 전문 화가들 사이 유행하던 이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사람도 좋아하고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주제를 선택하여 독학으로 터득한 방법으로 ‘현실적’.. 2022. 11. 12.
몽마르트르 물랭 루주의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산다는 것은 충분히 슬픕니다. 그래서 그것을 사랑스럽고 즐겁게 나타내야 하지요. 그것을 그리기 위해서 푸른색과 붉은색 물감이 있는 것입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Henri de Toulouse Lautrec 1864~1901 유전병으로 기형적인 몸, 그림에서 탈출구를 찾다 툴루즈 로트레크는 백작 가문에서 태어나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로트레크는 태어날 때부터 뼈에 문제가 있었는데, 조상들의 근친혼으로 '농축 이골증’이라는 유전병을 갖고 태어난 탓이었습니다. 이 병은 작은 충격에도 뼈가 잘 부스러지고 키가 자라지 않아 평생을 조심히, 고통속에서 살아야 하는 병이었습니다. 그는 자라면서 사고까지 당해 두 다리가 부러졌고, 14세가 지나서는 지팡이 없이는 걷기 힘들 정도로 나빠졌습니다. 그 이.. 2022. 11. 12.
쓸쓸한 그림 속에서 나를 본다, 에드워드 호퍼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1882~1967 20세기 미국 사실주의의 대가 호퍼는 미국 뉴욕주에서 태어나 어릴때부터 그림을 곧 잘 그렸고 일찌감치 화가가 될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뉴욕 상업 미술학교에 진학해 인생 최고의 스승인 로버트 헨리를 만났습니다. 헨리는 호퍼에게 그림의 기술적인 부분을 가르쳐 주는데 그치지 않고, 호퍼가 평생 간직한 그림을 그리는 '태도'를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바로 작가가 자신을 믿고, 개인성을 중요시하고, 정직한 감정을 가지고 주위의 삶을 대해야 한다는 ‘예술을 대하는 철학’ 이었습니다. 호퍼는 이러한 가르침을 받고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와 사회를 제대로 보고 표현하는 작품을 그리기 .. 2022. 11. 10.
삶과 예술에서 '나'를 세우다, 가브리엘레 뮌터 인간에 대한 존중 없이 진정한 초상화는 불가능하다 가브리엘레 뮌터 Gabriele MÜNTER 1877~1862 칸딘스키와의 만남, 독일 여성 화가의 탄생 가브리엘레 뮌터의 부모님은 아메리칸드림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독일에서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가 치과와 상점을 운영하며 큰 돈을 모았습니다. 미국에서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자리를 잡았지만 미국 남북전쟁이 터지자 1864년 고향 독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이러한 개척적인 삶을 살아온 뮌터의 부모님들은 당시 유럽의 여성들에게 보수적인 사회분위기와 달리 뮌터를 남녀 구별없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키웁니다. 뮌터는 당시 여성에게 흔치 않던 자전거를 즐겨 탓으며, 여성이 공식적으로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없던 시절 개인 교습을 통해 미술을 배워나갔습니다. 뮌터가.. 2022. 11. 10.
진정한 사랑을 꿈꾸는 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 우리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은 바로 사랑의 색깔이다 마르크 샤갈 Marc Chagall 1887~1985 마르크 샤갈의 탄생 마르크 샤갈은 러시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유대인 거주 지역 게토(Ghetto)에 살며 차별과 핍박을 받아왔습니다. 유대인 거주지의 교육은 낙후되어 있었으며 취업, 토지 소유 등은 제한될 뿐만 아니라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상업, 수공업 등 한정적인 직업만 가질 수 있도록 정해져있었습니다. 19살이 될 무렵 화가의 꿈을 꾸던 샤갈은 고향 비테프스크를 등지고 샹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합니다. 당시 유대인이 러시아의 수도인 샹트페테르부르크에 머물려면 체류 허가증이 필요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도망치듯 고향을 떠난 그가 체류 허가증이 있을리 만무 했지만, 다행.. 2022. 11. 9.
색으로 숭고미를 담은 화가, 마크 로스코 나는 추상주의 화가가 아니다. 나는 그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마크 로스코 1903~1970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가 되기까지 마크 로스코는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유럽에서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팽배해 지고 있을 때 이를 피해 온 가족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이 때 로스코는 아홉 살이었습니다. 마크 로스코는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스코는 학업에 뛰어나 예일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였지만 명문 대학 안에 엘리트주의와 인종차별주의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퇴하게 됩니다. 직장을 찾기위해 뉴욕을 방문했다가 그림을 그리는 친구 집에 들르게 되고, 그 때 운명처럼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단으로 ‘그림’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유럽 입체주의 회화들을 접하면.. 2022. 11. 9.
잔인한 인생을 그림으로 승화시킨, 프리다 칼로 나의 평생 소원은 단 세가지, 디에고와 함께 사는것,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 프리다 칼로 1907~1954 고난의 상징과도 같은 그녀의 인생 프리다 칼로의 인생은 교통사고, 여러 번의 수술, 남편의 바람기, 그렇지만 계속 된 남편에 대한 애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프리다는 당시 유명 화가였던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했지만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활이었습니다. 프리다는 그림을 통해 그녀의 몸과 마음의 고통을 화려하게 표현하였고, 20세기 후반, 21세기 초반에는 남편 디에고보다 칼로의 작품이 훨씬 더 주목받게 됩니다. 전통적인 수채화부터 초현실주의 그림까지 그녀의 고향인 멕시코의 전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평생에 걸쳐 200여 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운명과도 같았던 그림 프리다 칼로는 1.. 2022. 11. 8.
프랑스 로코코 미술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화가, 프랑수아 부셰 프랑수아 부셰 1703~1770 유럽 전역에 '프랑스풍'을 전파시킨 화가 프랑스의 화가 프랑수아 부셰는 화가인 아버지, 역사화가 르무안느(Lemoyne)와 베르네제의 지도를 받아 그림을 배웠습니다. 1723년에 아카데미의 로마상에 도전, 수상하게 되어 포상으로 이탈리아 유학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1727~1731년 5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베르사유궁 왕비의 방, 오텔 드 수비즈 살롱의 장식등을 도맡아 작업하는 등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특히 퐁파두르 부인의 적극적인 지지로 벽화, 회화뿐만 아니라 타피스트리 밑그림도 상당히 많이 그리며 프랑스 로코코 시대의 대표적인 작가가 되었습니다. 로코코는 조약돌을 뜻하는 프랑스어 ‘로카이유(rocaille)’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 2022.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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