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 그림에서 성적 상징을 보았다면 그것은 그 자신의 집착을 본 것일 뿐
조지아 오키프
Georgia O'Keeffe
1887~1986
'여류'화가이기를 거부한 꽃의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시작은 주류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아직 예술의 중심이 되기 전인 20세기 미국에서, 아직 사회적인 지위를 굳건히 다지지 못한 '여자' 화가로, 뭔가 모더니티하고 형태를 없애야 인기를 얻을 것 같은 미술계에서 '꽃'을 그렸습니다.
오키프는 평생 2백 점이 넘는 꽃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녀의 꽃 그림은 꽃 자체의 생물학적 형태에 추상적인 아름다움이 더해져 더욱 신비로움을 더합니다. 그녀가 꽃 그림을 처음 그리기 시작한 해가 1924년입니다. 영국에서 여성의 투표권이 인정 된 것이 1918년, 미국에서는 1920년에 여성들의 참정권이 허용되었습니다. 이렇듯 당시 여성들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인식과 참여 환경이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는 시기였습니다. 이런 시기에 그려진 오키프의 꽃 그림은 “성적 정체성에 대한 근대적 반성‘위에 핀 꽃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오키프가 그린 꽃은 대부분 가까이에서 들여다 본 크게 확대된 모습입니다. 누군가 왜 이렇게 꽃을 크게 그리냐고 물으니 “내가 강을 그릴 때 왜그렇게 강을 작게 그리냐고 묻지 않잖아요?”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예술계를 이끌어간 유럽에서 유행하던 예술 사조나 세상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보고 느끼는 그대로 그녀만의 독특한 화풍을 구축해 나갔습니다. 그녀는 그녀에게 자주 붙은 수식어인 미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여류'화가라는 평가를 매우 싫어했으며 그녀 내면을 고스란히 담아낸 그림 그대로, '예술가'로 평가받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오키프가 유명한 사진 작가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와 결혼 한 뒤에도 자신의 성을 그대로 사용한 것도 이러한 정신적 배경이 바탕이 되었다고 평가됩니다.
오키프와 스티글리츠
조지아 오키프는 당대 최고의 사진작가이자 전위적인 미술가를 발굴하는 데 남다른 안목과 영향력이 있던 스티글리츠를 만나 뉴욕중심가로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의 그림을 보고 '이제야 제대로 된 여류화가가 나타났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의 영향력으로 미국 화단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동거에 들어갔지만 스티글리츠는 이미 유부남이었고, 이로 인해 그녀는 오랫동안 그녀의 그림만으로 평가받기 보다 스티글리츠의 정부로 더 알려졌습니다. 관람객들은 그녀가 그리는 그림들을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았고, 그녀의 꽃 그림에서 관능과 성적인 상징으로 평가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스티글리츠는 다양한 앵글로 그녀를 담아냈고 그녀의 초상과 누드를 담은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의 사진을 본 후 그녀는 더 이상 사람을 그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의 사진을 보고 “그림으로 스티글리츠만큼 인물의 성격과 진실을 담아낼 수 없다”라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와 6년간 동거를 하다가 전부인과 이혼하고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들이 결혼한 1924년, 둘의 나이는 37세와 61세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3년 동안 그녀가 그림에 몰두하는 동안 스티글리츠는 오키프보다 18살 어린 또 다른 정부와 바람을 피웠다고 합니다. 이로인해 그녀는 큰 상처를 받았고 우울증에 빠지지만, 또 그림으로 상처를 극복해냅니다.
뉴멕시코 산타페에서 자연을 담다
오키프는 기차 여행을 하며 지나게 된 뉴멕시코의 광할하고 황량한 자연에 반해 이 곳을 새로운 작업의 거점으로 삼게 됩니다.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산파페에서 일년의 반을 지내며 그림을 그리고, 나머지 반은 뉴욕에서 스티글리츠와 함께 지냈다고 합니다.
이 곳에서 동물 뼈, 조개껍데기, 짐승의 두개골, 꽃, 선인장, 사막 풍경등을 관찰하고, .이를 내면화하여 캔버스에 옮겼습니다. 1946년 스티글리츠가 죽은 뒤 오키프는 뉴욕 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고 산타페로 이주하였습니다. 1976년까지 거의 30년간의 세월동안 아침에 일어나 꽃을 가꾸고, 오후에는 그림을 그리는 단조로운 생활을 거듭하였습니다.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오로지 창작활동에만 집중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그녀는 어느새 스티글리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당당히 그녀 이름으로 세계적인 화가의 반열에 들어섰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오키프는 현존하는 최고의 여성화가”라는 헌사를 바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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