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업은 꿈을 표현한 것이다
William Morris
윌리엄 모리스
1871~1896
미술공예운동으로 디자인의 기초를 다지다
윌리엄 모리스가 이끈 미술공예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은 당시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시장에 쏟아져 나온 낮은 품질의 공산품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조악하고 획일적인 물건들을 집에 두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했고, 1861년 모든 생활용품들을 예술가의 손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저렴하게 판매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우선 커튼, 이불, 카펫, 가구와 벽지 등 가정에 필수적인 요소와 물건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고 믿고 모든 생산 공정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건축, 미술, 인쇄 업계의 전문가들이 만나 직접 손으로 짜고, 그리면서 정성을 들인 물건들을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이러한 취지로 로세티, 건축가 필립 웨브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모여 모리스, 마셜, 포크너앤코(Morris, Marshall, Faulkner & Co,) 라는 이름으로 중세 양식의 가구와 장식품을 수제작하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벽화, 벽지, 장식, 스테인드글라스, 조각, 자구, 가구 등 수공예의 아름다움을 담은 많은 제품을 만들었고, 이 회사는 이후 모리스앤코가 되었으며, 당시 그냥 "그 회사 The firm"이라고만 말해도 모두가 알 정도로 성공을 거둡니다.
세 예술가의 삶의 중심이었던 켈름스콧
미술공예운동을 이끈 윌리엄 모리스, 화가이자 자수 공예가였던 윌리엄의 딸 메이 모리스, 그리고 ‘최후의 라파엘 전파’라 불린 화가 단테 개브리얼 로세티. 이 세 예술가의 작품이 폭발적으로 탄생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옥스포드셔 켈름스콧의 저택과 정원입니다.
1871년 윌리엄 모리스는 켈름스콧 저택을 빌립니다. 그는 이미 성공한 화가이자 사업가였으며 미술공예 운동으로 디자인의 부흥을 이끌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 곳 켈름스콧에 머물며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식물에서 영감을 받아 직물과 벽지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는 1891년 이곳에서 출판사를 설립하는데, 윌리엄 볼든의 도움으로 장식 문자와 특수 활자를 개발해 역사상 가장 아픔답다고 평가되는 <사가판본>을 출판합니다.
윌리엄 모리스과 아내 제인의 딸인 메이 모리스는 아홉 살 때부터 켈름스콧에서 함께 지냈으며, 현재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가 된 국립예술훈련학교(National Art Training School)에서 자수 공예를 배워 모리스앤코 Morris & Co.에 합류하였습니다. 이후 메이 모리스는 전통 직물에 대한 연구와 강연을 지속하며 디자인과 수채화 작업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추구한 "기계가 아닌 인간의 섬세함을 믿고 자연을 존중하는 미술공예의 이상"을 딸이 이어나갔습니다.
메이 모리스는 가족 중 켈름스콧에서 가장 오랫동안 머물며 정원을 직접 가꾸기도 했습니다.그녀는 매일 아침 이곳에서 정원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집을 장식할 꽃을 꺽고 텃밭에서 채소를 수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곳의 자연물에서 영감을 받아 수백 점의 자수 작품을 디자인하였습니다. 켈름스콧에서 직물에 천연 염색을 실험해 보기도 했는데 꼭두서니에서 빨간색, 목서초에서 노란색, 쪽에서 파란색 염료를 얻었습니다.
아버지 윌리엄모리스와 함께 켈름스콧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딸기 도둑(The strawberry thief), 인동덩굴(Honeysuckle), 버드나무 가지(Willow Bough) 패턴이 유명합니다.
그리고 또 한명의 예술가, 로세티가 있습니다.
윌리엄 모리스, 제인 모리스 그리고 로세티의 삼각 관계
윌리엄 모리스는 극장에서 훗날 그의 아내가 된 제인 버든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의 동료이자 선배인 로세티가 그녀를 먼저 모델로 발탁했고, 그는 제인과 사랑에 빠져 그녀를 모델로 한 작품을 다수 남깁니다. 1871년 5월 윌리엄 모리스가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떠나는 동안 제인과 두 딸은 로세티와 함께 켈름스콧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이 곳에서 로세티는 제인을 모델로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1871년 9월, 제인과의 관계가 끝나갈 무렵 윌리엄 모리스는 가족들과 함께 다시 런던으로 떠났고 로세티는 혼자 켈름스콧에 남아 쓸쓸하게 보냈습니다. 심한 상실감에 몇 번의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로세티는 1874년 켈름스콧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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