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바칠 곳은 파란색이 될 것입니다
이브 클랭 Yves Klein
1928-1962
세상에서 이브 클랭만 쓸 수 있는 블루
1948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동안 이브 클랭은 아시시 대성당에 있는 파란색 프레스코화에 매료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파란색이 값비싼 청금석 가루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매우 비싼 안료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그림에서도 정말 중요한 부분에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1955년에 그는 파리로 가서 "모노크롬(Monochromes)" 시리즈를 시작했는데, 이것은 커다란 캔버스를 하나의 색채로 균일하게 칠한 그림을 일컫습니다. 그는 자신이 의도한 선명한 색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물질과 화학 약품들을 가지고 실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미래의 많은 예술가들이 단색 작품을 만들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특히 한 가지 색상에만 집중하였고, "내 인생을 바칠 곳은 파란색이 될 것입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화학자들과 수차례 시도끝에 마침내 1960년에 International Klein Blue(I.K.B.)로 특허를 받았습니다. IKB는 젖은 상태이건 마른 상태이건 동일한 밝기와 농도를 지닌 색을 만들기 위해 합성수지에 건조시킨 안료를 섞어서 만들었습니다.
1957년에 그 색이 처음으로 완성되었을 때, 클랭은 그것을 "모든 기능적 정당화로부터 해방된, 파랑 그 자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IKB를 사용해서 평생 거의 200점에 달하는 그림을 완성했습니다.1959년 소르본 대학에서 강연회 초정을 받은 그는 자신의 모노크롬 회화 이론을 가리켜, 색채에서 주관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그것을 형이상학적인 오브제로 전환시킴으로써 색채를 객관화하는 시도라고 설명했습니다.
개념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다
클랭은 전에 없었던 회화 실험을 계속하며 예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우주 발생론'(1960) 연작에서 그는 바람과 비의 예측할 수 없는 효과들을 캔버스에 기록했고, '인체 측정'(1960~1961) 연작에서는 클랭이 직접 작곡한 곡인 '단음 교향곡'(1949)이 연주되는 가운데, 푸른색 페인트를 칠한 여성들의 벌거벗은 몸을 바닥에 놓인 커다란 캔버스에 굴려 그림을 그렸습니다. 당시 그의 '살아있는 붓'을 가르켜 너무 도발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화염 방사기를 사용해 그린 '불 그림'(1961~1962)도 있습니다.
1961년 봄, 프랑스의 팝아트에 해당하는 예술 운동인 New Realism을 공동 창립한 직후,
클랭은 프랑스 국영 가스 회사의 테스트 센터인 Centre d'Essais du Gaz de France를 방문합니다.
그 곳에서 '불 그림' 시리즈를 제작합니다. 클랭은 그 곳에서 40kg 무게의 산업용 토치를 사용해 1미터 길이의 화염과 방출되는 열을 제어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불에 의해 갈라지고 줄무늬가 생긴 젖은 표면은 금색에서 갈색과 검은색으로 변하며 오묘한 무늬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가 그날 마지막으로 그린 <FC1>은 더욱 경이로웠습니다.
모델들에게 물을 뿌리고 압축된 보드에 몸을 대고 횃불로 그 부분을 훑으며 네거티브 이미지로서 스펙트럼 흔적을 드러내도록 제작하였습니다.
사람의 실루엣을 종이에 '불태움'으로써 사진에서 빛이 하는 것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독창적인 '불'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클랭은 이 테스트 센터에서 약 125점의 그림을 그렸고, 2012년 FC1은 크리스티에서 3,640만 달러에 판매되었습니다.
파리의 이리스 클레르 화랑Iris Clert Gallery에서 '텅 빈 전시회The void'를 열기도 했습니다. '텅 빔'(1958)이란 표제의 이 전시회는 화랑의 내부를 온통 하얗게 칠한 다음 텅 비워놓은 것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벨벳 블루 커튼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고 한 번에 10명의 방문객만 입장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어서 인상적인 그의 작품을 보러 온 관람객이 2500명이나 되었습니다.
또 그는 생제르맹 데 프레 광장에서 1001개의 파란 풍선을 띄우고, 이것을 "Aerostatic Sculpture"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그는 시대를 몇 앞서가며 개념 예술의 경계를 계속 허물었습니다.
세가지 색상으로 만든 삼위 일체
클랭은 파란색 뿐만 아니라 금색과 분홍색도 자주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종교와 철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작품에 금색과 분홍색을 사용한 것도 종교적 교리에 대한 관심의 반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파란색과 함께 사용한 이러한 색상은 종교적 도상학에서 신성한 삼위 일체를 연상시킵니다. 아버지는 금색, 아들은 파란색, 성령은 분홍색을 상징합니다.
이브 클랭은 세 번의 연속적인 심장 마비로 34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클랭이 독보적인 컬러를 만들어내기 위해 강력한 화학 물질을 자주 사용했기 때문에 건강 악화가 가속화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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