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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들여다보기

살아있는 현대미술의 전설, 게르하르트 리히터

by crystalpalace 2023. 11. 29.

 

 

 

나는 어떤 목표도 체계도, 어떤 경향도 추구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강령도, 어떤 양식도, 어떤 방향도 갖고 있지 않다.
나는 무규정적인 것을, 무제약적인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끝없는 불확실성을 좋아한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Gerhard Richter
1932~

Gerhard Richter. Photo by Christian Marquardt/Getty Images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는 독일의 현대미술가로, 1932년 2월 9일에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의 파란만장한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며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리히터가 어린 시절 겪은 전쟁과 파시즘이 그의 삶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힘든 시기를 겪었던 경험은 그의 예술적 방향을 탐구하는데 영향을 미쳤고, 그의 작품에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주제에 대한 민감성이 담기게 됩니다. 

리히터는 1951년 독일의 드레스덴 예술 아카데미에서 학문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이는 그의 미술적 경력을 쌓는 중요한 단계 중 하나였으며, 이후 그는 다양한 예술적 양식과 스타일을 탐험하면서 독자적인 예술적 언어를 개발하였습니다. 
다양한 예술 현장에서 활동하며 특히 추상화와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양식을 탐구해 왔습니다.

사진과 회화, 추상과 구상, 채색화와 단색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한 작가의 작품임을 의심할 정도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를 다섯 번이나 참가하였으며, 1996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2002년, 70세의 나이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2012년, 80세의 나이로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현역으로, 거장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틀라스 Atlas

 
리히터는 1960년대 중반부터 직접 촬영한 사진, 신문 스크랩, 스케치 등을 판지에 붙이고 모아 <아틀라스 Atlas>라 이름으로 만든 자료집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Gerhard Richter, Atlas Mikromega, exhibition view, Lenbachhaus, Munich, 2013

 
아틀라스는 지금까지 1만 5천 점의 자료를 판지에 붙여 정리한 형태로 약 8백 점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그의 강박적 수집을 통해 국제 미술계 현장의 주요 트렌드를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대가'로 인정받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라면 꾸준함, 집요함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이 수집품 자체가 그의 작품으로 인정받기도 합니다.
수천장의 사진, 스케치, 꼴라주를 수집하기 시작하여, 일정 기준과 내용에 따라 그룹화하여 전시를 하기도 합니다. 
일부 모티브들은 그의 그림과 작품의 원천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의도된 흐릿함, 포토리얼리즘

리히터는 사진을 회화로 재해석하는 방법을 통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습니다. <작가 미상>이라는 영화에서 리히터의 포토리얼리즘 탄생 스토리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는 아틀라스에 모아둔 잡지, 신문, 책 등의 다양한 이미지들을 참고하여 보고 그렸으며, 사진의 선명함을 회화로 변환시킬때 의도적으로 뭉개버리는 스타일을 만들어냅니다. 
 
 

리히터의 작품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양한 변천을 거쳤습니다.



The New York Times


“Abstract Painting” 시리즈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만들어졌으며, 리히터의 작품세계는 풍부하고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며, 그의 특유의 스타일은 블러(Blur) 기술을 활용한 작품과 선명한 초상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그의 추상화에 대한 탐구와 실험의 정점을 보여주며, 블러된 형태와 선명한 색채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독특한 시각 언어를 전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대표작으로는 “Betty”가 있습니다. “Betty”는 그의 딸인 베티를 다룬 초상화로, 사실적이면서도 추상적인 표현으로 그의 가족과 관련된 작품 중에서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정교한 기술과 감성적 표현을 통해 가족과의 연결, 일상의 아름다움을 다루고 있습니다.

 
 

Betty, 1988, 세인트루이스 미술관 소장

 
1980년대 중반부터 리히터는 포토 리얼리즘 작업과 함께 추상회화를 시도합니다. 
어떻게 보면 포토 리얼리즘과 반대에 놓여 있는 듯한 추상화에 대해 리히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STRIP(921-2) Digital Print on Pater Mounted between Aluminium and Persper, 2011, Courtesy of the Artist and Foundation Louis Vitton Photo Credit: Primae/Louis Bourjac

 

추상화는 구상적 모형이다.
그것은 우리가 볼 수도, 기술할 수도 없으나, 분명히 존재함을 알고 있는 어떤 현실을 가시화시키기 때문이다. 그 세계를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것, 파악할 수 없는 것이라는 부정적 개념으로 표시한다.
그것을 우리는 수천 년 전부터 천국, 지옥, 신과 악마라는 그림으로 대체하여 묘사해 왔던 것이다.
추상회화와 더불어 우리는 그 보이지 않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직접 다가갈 수 있는 더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추상회화는 직접적인 직관성 속에서
예술의 모든 수단을 가지고 무(無)를 묘사하기 때문이다.”

 
 
 

색에 대한 연구 

1966년, 리히터는 산업용 페인트 색채 견본집을 보고 색상에 대한 연구를 시작합니다.
이 색채 견본집은 앞으로 그의 작업에 중요한 영감을 주는 요소로 작용하게 됩니다. 
 
2007년, 리히터는 1944년 공습으로 파괴된 쾰른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 하나를 디자인하게 됩니다. 
중세 시대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사용된 색 중 72가지를 뽑아내고 이 컬러를 적용한 11,200개의 색유리판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무작위적으로 배열하여 '완벽한 조화'를 이 추상적인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명확한 스토리와 형태를 담았던 기존의 스테인드 글라스와는 확연이 다른 모습에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로마 가톨릭 추기경인 요아힘 마이스너는 "모스크나 다른 종교의 신전 같다"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쾰른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이 작품과 함께 동시에 진행한 '4천900가지 색채'도 같은 방식으로 제작하였습니다. 
 

에스파스 루이비통 '4천900가지 색채' (4,900 colours)

 
한 컬러 패널의 크기가 가로 세로 9.7cm의 정사각형으로, 가로와 세로 5개씩 25개의 컬러 모듈을 모아 25개가 된 것을 하나의 컬러 패널로 구성하였습니다.
이 패널이 196개가 모이면 4,900개의 컬러 모듈이 되지요. 이 25개의 컬러 모듈이 모인 패널을 여러 크기로 조합해 총 11가지 버전으로 구성하였습니다.
 
2021년 우리나라에서도 4,900가지 색채 전시가 열렸습니다. 루이비통 재단 큐레이터와 게르하르트 리히터 스튜디오와 협의를 통해 에스파스 루이비통 전시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2023년 9월, 리히터는 이러한 색의 조합 장식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하나 더 발표합니다. 
1932년 생인 리히터는 올해 91세임을 감안하면 앞으로 이와 같은 대형 작품을 발표하기에 힘들수도 있겠다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리히터는 자신의 작품에 항상 번호를 붙여왔는데, 이 작품은 957번입니다. 

톨리 수도원의 스테인드글라스 The New York Times

 
독일 톨리(Tholey)에 위치 수도원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이 톨리 수도원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이라고 합니다. 
 
작품의 가격 면에서는 그의 중요한 작품들이 국제 미술시장에서 높은 인기와 평가를 받아 상당히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특히, 리히터의 초상화와 추상화 작품은 현대미술 시장에서 높은 경매 가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톨리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기부하는 방식으로 작업하였습니다

예술가의 명성이 정점에 달했을때,
종교에 귀의하듯 성스러운 작업에 생의 마지막을 담는 작가들이 꽤 많아보입니다
알폰스 무하가 그랬고, 마크 로스코도 마지막 작품이 예배당을 만드는 것이었죠

인생을 일반인들보다 더 깊게 들여다보고 고민하고 표현했던 끝에는 영혼의 평혼함을 추구하게 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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