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책을 읽는 남자나 뜨개질하는 여성을 그리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숨 쉬고 고통받고 느끼고 사랑 때문에 좌절하고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그릴 것입니다
Edvard Munch
1863~1944
상실감에 시달린 일생
1861년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뭉크는 군의관인 아빠를 두고, 다섯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뭉크의 어머니는 1868년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그 후 종교에 심취하여 미신의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한 살 위 누나가 어머니 대신 살림을 돌보았는데, 뭉크가 14살 일때 그 누나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뭉크의 여동생 로라 카트린느는 정신병에 걸린데다, 1877년 여동생 소피마저 결행으로 사망했습니다.
아버지 마저도 뭉크 나이 26세에 세상을 떠나죠
어떻게 이렇게까지 불행이 연속으로 올 수 있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라면 제 정신으로 생활하는 것 자체가 힘들 것 같습니다.
이러한 어두운 어린 시절 환경에서 부터 시작된 그의 고통, 상실감, 죽음에 대한 경험은 이 후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등장합니다.
여러번에 걸쳐 그린 <병든 아이 The Sick Child>는 이렇게 잃은 누이 동생과 누이를 생각하며 그렸을까요?
그의 슬픈 가족사를 알고 나면 더욱 깊은 슬픔이 느껴집니다.
뭉크의 대표적인 작품, 절규 The Scream
뭉크의 대표적인 작품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규>를 떠올립니다.
이 작품은 뭉크의 불안했던 정신 상태로 인한 왜곡적인 표현방법과 초현실주의의 문을 여는 실험적인 작품으로 명성이 높습니다.
두 명의 친구와 길을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고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우울한 조짐을 느끼며 나는 멈춰 섰다
여전히, 죽을만큼 힘들었다 검푸른
피오르과 도시 위로 불타는 혓바닥과 피가 내려오고 있었다
내 친구들은 앞으로 가고 나는 뒤에 남았다
불안에 몸을 떨며 자연을 관통하는 거대한 절규를 느꼇다.
이 시는 페테르 올센이 소장하고 있던 <절규>의 프레임에 뭉크의 손글씨로 쓰여져 있었습니다.
이 <절규>작품은 여러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1893년~1910년 사이 2개의 페인트 버전과 2개의 파스텔 버전을 제작하였으며, 판화도 만들었습니다.
1893년, 카드 보드에 파스텔, 템페라, 유채로 그린 최초의 오리지널 버전은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절규>는 표현 방식과 주제의 혁신성에서 큰 호응을 얻게 되었고, 1910년에 다시 한번 더 <절규>를 그립니다. 두번째 그린 절규는 뭉크 미술관Munch Museum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2004년 도난당했다가 2006년에 다시 찾았다고 합니다.
1895년 그린 파스텔 버전의 경우, 2012년 5월 소더비에서 약 1,300억원에 낙찰되었습니다. 낙찰자는 2013년 MoMa에서 1년 동안 전시를 한 뒤 개인 소장으로 다시 가져갔다고 합니다.
뭉크의 모델, 다그니 유엘
다그니 유엘Dagny Juel(1867~1901)은 뭉크의 여러 작품에 등장합니다. 실물 크기의 초상화 뿐만 아니라 당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마돈나> 이외에도 <재>, <흡혈귀>, <질투>등의 작품에서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노르웨이 명문가 출신으로 뭉크와는 베를린에서 처음 만나게 됩니다.
1892년 뭉크는 베를린 미술가협회의 초대로 베를린에서 전시회를 연 뒤 그 후 몇년 동안 베를린에서 머물며 그의 대표작 <절규>, <사춘기>, <마돈나> 등을 그립니다.
다그니 유엘은 1893년 음악 공부를 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왔고, 뭉크는 그녀를 예술가 동료들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다그니는 아련한 듯 매혹적인 눈매와 뚜렷한 입매가 매우 매력적입니다.
그녀는 날씬한 몸매에 세련된 패션 감각으로 사람들을 끌어 당기는 매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압생트를 1리터나 마셔도 취하지 않았고, 넘치는 매력으로 주위 남자들의 칭송을 받았습니다. 미술사학자 율리우스 마이어-그레페는 "그년는 가장 재치 있고, 가장 관능적이며, 가장 신비롭다"라고 그녀를 치켜세우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매력을 뭉크는 <손들 The Hands>라는 그림을 통해 보여줍니다.
자신감 넘치는 포즈로 서있는 그녀를 향해, 그녀에게 닿기 위한 손들이 뻗어옵니다.
다그니가 모델이었던 이 <마돈나> 그림 역시 여러 버전으로 그려졌습니다.
자세와 표정에서 성스럽다기 보다 관능적이고 세속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그녀는 모델에만 머무르지 않고 뭉크의 전시 기획자로 큰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뭉크의 베를린 전시 때 그녀는 작품의 전시 방법, 배치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폴란드 갤러리에서 뭉크의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뭉크와 다르니,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었던 스타추는 우정과 사랑이 복잡하게 얽힌 삼각 관계를 유지해 나갔으나, 다그니는 남편의 외도로 오랫동안 힘든 결혼 생활을 겪었으며, 결국 남편 추종자에게 살해를 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삼각 관계는 뭉크의 작품 <질투>를 통해 드러나기도 합니다.
다행히 뭉크는 말년은 평화롭게 보냈습니다.
나치는 뭉크의 그림을 '퇴폐 미술'로 여겨 작품 수십 점을 압수하려고 했습니다. 뭉크가 노르웨이 비츠텐 지역에 살고 있을 때 옆집에 살던 친구이자 주요 후원자였던 토마스 올센 부부에게 그림을 지켜 달라는 부탁을 하였고, 올센은 그의 그림 72점을 동네 헛간에 숨겨 지켜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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