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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들여다보기

예술을 위한 예술,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by crystalpalace 2023. 2. 2.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James Abbott Mcneil Whistler
1834~1903

휘슬러의 초상

런던의 소문난 멋쟁이, 휘슬러


미래는 댄디의 것이다.
멋쟁이들이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그는 어깨와 허리가 꼭 맞는 검은색 모직 코트를 입어 길고 날씬한 몸을 강조했으며, 잘 다듬어진 콧수염에 단안경을 쓰고 가느다란 지팡이까지 들어 댄디함의 끝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영국의 멋쟁이로 소문난 오스카 와일드와 자웅을 겨루기도 했습니다.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의 초상 by William Merritt 188.3 x 92.1 cm





적을 만드는 우아한 기술

휘슬러가 쓴 책 제목입니다.

그는 잘 참지 않는 모난 성격으로 유명했지요.

당시 저명한 비평가 러스킨과 명예훼손으로 법정 다툼을 벌이기도 합니다.
아래 그림,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 떨어지는 불꽃>은 템스 강변에서 강 위로 터지는 불꽃 놀이, 쏟아지는 불꽃, 흐릿한 사람의 형체가 매우 강렬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이 그림에 대해 러스킨은 혹평을 퍼부었고, 휘슬러는 이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러스킨을 고소했습니다.
러스킨은 19세기 후반 가장 유명한 평론가이자 작가였습니다. 그의 명성은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 대륙에까지 알려져 있었습니다.

재판 기간 동안 휘슬러는 그의 예술적 원칙,"예술은 그 아름다움만으로 감상하고 존경해야 한다"를 강조했습니다.
결국 재판에서 승소하지만 과도한 변호사 비용으로 파산하고 맙니다.

Nocturne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떨어지는 불꽃, 1875


그의 그림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은 휘슬러가 어머니를 그린 작품입니다.
보통 어머니의 그림을 생각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따뜻한 느낌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는 주로 색상으로 그림의 제목을 짓고 주요 컬러로 사용하였는데, 회색과 검은색으로 표현한 어머니의 그림에는 작가의 감정은 빠진 채 그의 말대로 "예술을 위한 예술"로만 표현되어 있습니다.

James McNeill Whistler, Arrangement in Grey and Black No. 1, 1871



영국의 유명한 작가 오스카 와일드와도 처음에는 친분을 과시하였으나 나중에는 완전히 돌아서게 됩니다.
모난 성격과 거친 언사로 많은 다툼을 일으켰던 그의 말년은 쓸쓸했습니다.

휘슬러의 작품세계


런던에서 보낸 첫 해에는 휘슬러는 사실적인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템스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담소를 나누고 있는 세 사람을 그린 "걸작" Wapping(1860~1864)은 왕립 아카데미에 채택되어 후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wapping, 1861, 72 x 101.8 cm

그러나 1862년 출품한 Symphony in White No. 1: The White Girl 이 아카데미에서 거절당하자 자신감의 위기를 겪고 실험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일본 목판화 스타일에서 영향을 받아 새로운 종류의 스타일을 창조했습니다.

Symphony in White No. 1: The White Girl


이 때 그림을 담은 캔버스와 함께 그림과 어울리는 프레임까지 직접 디자인합니다.
이 시기 제작한 것이 위 <녹턴, 야상곡> 시리즈입니다.


Harmony in Grey and Green: Miss Cicely Alexander, 1872-4





이 그림의 모델인 시실리 알렉산더는 성공한 런던 은행가 W.C. 알렉산더의 딸이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일본식 칠기, 청화백자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었고, 휘슬러는 금 테두리가 있는 검은색 다도와 벽 칸막이, 섬세한 데이지, 나비를 더해 초상화에 자포니즘의 분위기를 담았습니다.
그는 시실리가 입은 옷까지 직접 디자인하였으며 인도 모슬린 소재로 제작에 대한 세부적인 지시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휘슬러는 모델을 정교하게 표현하고 컬러를 세심하게 조정하였는데 어린 소녀들이 몇 시간씩 70번이나 앉아있도록 요구해서 시실리는 나중에 "마치 고문을 받는 것 같았다"라고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공작방, The Peacock Room


영국의 해운왕 프레더릭 레일랜드의 저택 식당에 만든 공작방
레일랜드는 그 당시 귀하디 귀한 중국 도자기를 다수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1870년대 건축사 토마스 젝킬에게 런던 자택에 도자기들을 전시할 방을 설계, 제작하도록 의뢰하였습니다.
레일랜드가 의뢰 후 잠시 런던을 떠나 있는 동안 젝킬이 건강 상 문제를 겪었고, 휘슬러가 대신 이 방을 꾸미게 됩니다.
휘슬러는 본인의 스타일로 이 방을 꾸미면서 매우 만족해 했지만 정작 방의 주인 레일랜드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전액을 지불하기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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