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이다
유영국의 그림을 보았을 때 이 색감과 이 조형적 아름다움을 담아 드레스를 만들어 입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채로운 색과 조형미를 담은 유영국의 그림은 지금 보아도 세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절제된 조형미로 이루어 낸 한국적 추상
유영국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불립니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이건희 컬렉션을 통해 그의 작품이 대거 공개 되었고, 예술 애호가로 잘 알려진 BTS RM이 그의 작품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며 소장까지 한 장면을 SNS로 공유하면서 대중들의 관심과 인기를 더해갔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화풍 탓에 정작 작가가 살아 생전에는 그림이 거의 팔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1975년 다섯 번째 개인전을 열었을때 비로소 그림이 팔리기 시작했는데 그때 첫 고객이 바로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1930년대 일본의 가장 전위적인 미술학교 중 하나였던 문화학원에서 유학하며 당시 자유미술가협회, 독립미술협회 등 다양한 전위 단체 활동을 통해 추상미술 세계를 넓혀나갔습니다.
1943년 귀국 한뒤 고향 울진으로 돌아와 생계를 위해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았고,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고향 울진으로 내려와 가업이었던 양조장을 운영하며 가족을 부양하였습니다. 생업과 함께 틈틈이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화단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 사실 유영국은 사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피난민들이 넘쳐나는 시절, 고향을 그리워하며 마시는 술이라는 의미로 소주 이름을 '망향'이라 지었으며 소주병의 라벨도 직접 디자인했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항구에서는 돈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영국의 고향이었던 울진 죽변 역시 물고기와 뱃사람과 돈이 넘쳐나는 항구였습니다. 가족과 고향을 읽은 슬픔, 고된 항구의 일, 술 한잔 생각나게 하는 싱싱한 생선.. 술을 부르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유영국이 만든 술은 담기가 무섭게 팔려나갔습니다.
시장의 흐름을 읽는 눈과 함께 마케팅 능력이 이처럼 탁월하였습니다.
1955년 이후 서울로 상경한 그는 신사실파, 모던아트협회, 신상회, 현대작가초대전 등 한국 미술단체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신사실파라는 이름은 "추상을 하더라도 추상은 사실이다"라는 의미로 다양한 주제들을 추상으로 표현해보자는 취지로 김환기가 지었다고 합니다. 이 신사실파에는 장욱진, 이중섭, 백영수와 유영국이 함께합니다.
이 시기 유영국은 산, 언덕, 계곡, 노을 등 자연의 요소들을 화폭에 담았으며, 점차 추상화해 나갑니다.
강렬하고 절묘한 색의 조화를 보여주며, 마티에르 즉 재질감을 풍부하게 살리는 방식을 추구합니다. 1964년 개인전 이후에는 2002년 타계할 때까지 모든 미술 그룹 활동을 그만두고 개인 작업에만 몰두하였으며, 이 시기 최고의 완성도를 이룬 수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건희 컬렉션 23,181점 중에서 유영국의 작품이 187점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나는 화가가 될 것이다.
첫 개인전을 열었던 1964년을 기점으로 그는 모든 외부 활동을 중단하고 2년 주기로 개인전을 꾸준히 개최하였습니다. 이 때, 유영국은 집요한 실험정신으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확장시킵니다.
<작품>은 그 전환기의 작품으로 강렬한 색채와 형태감으로 유영국 추상 미학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유영국의 작품에는 점, 선, 면, 형, 색등 기본적인 조형요소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추상화된 조형의 언어로 고향 울진의 깊은 바다, 산맥, 계곡, 나무, 호수, 태양 등 대 자연을 연상시키는 것이 그의 작품의 대표적 특징입니다.
색채는 빨강, 노랑, 파랑 등 삼원색을 기반으로 유영국 특유의 보라, 초록 등을 다양하게 조화시킵니다.
그는 특히 평생동안 산을 다양하게 화폭에 담았는데 왜 이렇게 산을 많이 그리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산에는 뭐든지 있다
봉우리의 삼각형, 능선의 곡선, 원근의 단면, 다채로운 색
이런 산, 저런 산, 갖가지 색채와 형태들의 조화로 하나같이 새로운 조합을 보여주는데, 결국에는 '산'입니다.
컬러와 형태 속에서 재미있게 평생을 보낸 작가의 결과물에서 절대 보편의 정수essense가 느껴집니다.
1977년부터 그는 심장 박동기를 달고 살았으며, 2002년 만 86세의 나이로 타계하기 전까지 8번의 뇌출혈, 37번의 병원입원 생활을 계속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아름다운 그림을 끊임없이 만들어냈습니다.
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했어
세상에 태어나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이 나는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고 간섭받지 않으면서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면서 평생 자유로운 예술을 할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예술가 들여다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장 예술적이면서 대중적인 팝아티스트, 줄리안 오피 (0) | 2023.01.30 |
---|---|
나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본 것을 그린다, 에드바르 뭉크 (0) | 2023.01.28 |
한국의 아름다움을 추상으로 표현한 김환기 (0) | 2023.01.23 |
파리에서 아르누보를 꽃 피운, 알폰스 무하 (0) | 2023.01.04 |
파리의 모습을 기록한 화가, 미쉘 들루크루아 (0) | 2023.01.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