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바스 오스망 화랑 창문에 전시된 드가의 파스텔화를 처음 보았을 때를
잊을 수가 없어요
나는 내 코가 납작해질 정도로 창문에 얼굴을 붙이고
그의 작품에 열중했어요
그것은 내 인생을 바꿔놨어요
난 예술을 보았고 곧 나는 내가 본 그것을 원하게 되었습니다
메리 커셋
Mary Stevenson Cassatt
1844~1926
화가의 꿈을 이루기까지
메리 커셋은 미국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유럽 미술관에서 명화들을 접한 뒤 화가의 꿈을 키워왔습니다.
당시 미국 상류층에서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커셋도 일곱 살에 유럽 여행을 떠나 5년간 머무르며 런던, 파리, 베를린 등을 여행했고, 프랑스어, 독일어 등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11세에 파리국제박람회에서 본 쿠르베의 그림에 감동을 느낀 메리는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화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으나 처음에는 가족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접지 않았던 그녀는 15세에 펜실베니아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전문적이지 못한 학교 교육에 실망한 그녀는 학위를 받기 전 파리로 떠납니다.
메리 커셋은 프랑스 인상파 화가전에 합류한 유일한 미국 출신 화가였습니다.
여성들의 독자적인 사회, 직업 활동이 제한되어 있던 그 당시, 메리 커셋은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재능과 열정, 그리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미술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파리 인상파의 대열에 합류하다
미국에서 못다한 그림 공부를 더 하기 위해 파리로 건너왔지만 파리의 '에콜 드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는 여학생을 받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장 레온 제롬에게 그림을 배움과 동시에 루브르 박물관에서 작품을들 모작하며 예술적인 감각을 키워 나갔습니다.
당시 파리의 예술계에서는 전통적인 미술 양식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으로 혼란스러울 때였습니다. 그녀 역시 오랫 동안 자신만의 화풍을 갖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아직 인상파 화가들이 대중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비평가들의 악평이 쏟아지고 있던 1878년, 그녀는 에드가 드가에게 초대되어 다른 인상파들과 함께 전시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이 때 인상파의 멤버로 활동중이었던 베르트 모리조를 만나게 되고, 오랜 친구이자 동료가 됩니다. 베르트와 메리는 둘 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비슷한 집안 환경에서 자랐으며 나이도 비슷하고 집도 가까워 둘은 친하게 지내며 서로의 작품에 영향을 주고 받았습니다.
메리 커셋은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 특히 드가의 작품을 좋아했습니다. 그녀는 드가의 그림을 본 후 파스텔을 자주 활용하였으며, 드가는 그녀에게 에칭 기법 등을 전수해주며 같이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40여 년간 드가와 메리는 평생을 스승이자 연인, 동지의 관계를 유지합니다.
드가는 여러 차례 커셋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도 했습니다.
드가의 초대로 참여하게 된 인상파 전시는 생각보다 성공적이었고 그녀도 수익을 얻게 됩니다.
또 메리 커셋은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미국에 알리는 데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당시 클로드 모네는 비평가들에게 가장 큰 비난을 받고 있었고, 메리 커셋은 그녀의 수익으로 드가와 모네의 작품을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판로가 많지 않았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직접 매입해 화가들에게 금전적인 여유를 주었으며 미국의 콜렉터들과 연결하여 팔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기도 했습니다. 미국 미술관에 프랑스 인상파 그림이 많은 것은 메리의 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마와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담다
메리 커셋은 '엄마와 딸'이라는 주제를 가장 즐겨 그렸습니다.
커셋이 활동하던 시절은 여성들에게 제약이 많은 사회였습니다. 당시 여성 화가는 가족이 아닌 남자를 그릴 수 없었고,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그릴 남편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제한없이 접할 수 있는 대상으로 자연스레 언니와 조카들을 모델로 하게 되었습니다. 한 따뜻한 일상을 그림으로 담아냈습니다.
엄마품에 안긴 아이의 표정이 더없이 행복하고 편안해 보입니다.
커셋은 주로 아이들, 가족들을 주인공으로 안락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그렸는데, 밝은 햇볕 아래 부드럽고 따뜻한 촉감이 느껴지는 듯한 그림은 모성애의 감동을 전달하는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아이를 키워보신 분이면 이 장면이 익숙할 듯 합니다.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장난감처럼 쪼물거리다가, 쓰다듬었다가, 머리카락을 잡아 당겼다가.. 온갖 촉감을 다 느껴보고 싶어하지요.
말랑 말랑한 손으로 만져주는 그 손길에 이것이 사랑이구나.. 하고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품에 폭 안고 있는 말랑 말랑한 아이는 그 자체가 사랑입니다.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해 더 크지 마라...하고 바란 적도 있지요.
"엄마껌딱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이에게 가장 좋은 곳은 엄마 품인가 봅니다.
<푸른 의자에 앉은 어린 소녀> 그림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2014년 미국 내셔널갤러리에서 대규모의 메리 커셋 회고전을 개최했는데, 이 작품을 분석한 결과 배경에서 수정한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아이가 앉아 있는 의자 뒷편으로 깊이감 있게 표현된 실내공간이 사실 커셋이 스승처럼 여기던 드가의 공간 구성과 유사하다고 합니다. 커셋이 친구에게 "그가 내 그림에 손을 댔어!"라고 쓴 것을 보아 드가가 조언뿐만 아니라 직접 수정까지 해주던 것으로 유추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커셋은 드가의 간섭을 피해 점점 그림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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