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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들여다보기

황홀한 색채의 마술사, 마리 로랑생

by crystalpalace 2022. 11. 7.

나를 열광시키는 것은 오직 그림이며,
그림만이 영원히 나를 괴롭히는 진정한 가치이다.

마리 로랑생
Marie Laurencin
1883~1956

몽마르트르의 뮤즈이자 세탁선(Bateau Lavoir)의 멤버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 중 한 명인 마리 로랑생은 국회의원의 숨겨진 딸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힘들게 자랐습니다.
18세에 도자기로 유명한 도시 세브르로 내려가 도자기 그림 기법 학교를 다녔고, 파리로 돌아와 유화에 관심을 가지며 화가의 꿈을 꾸게 됩니다.
곧 입체파의 창시자인 조르주 브라크의 눈에 들어 피카소, 모딜리아니, 장콕토, 루소 등과 교류하게 되었고, 그들의 멤버로 인정받아 1905년 당시 화가들의 공동 작업실이었던 몽마르트르의 아틀리에 ‘세탁선(Bateau Lavoir)’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로랑생은 이 아틀리에에서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세계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누가 보아도 호감이 갈 만큼 아름다웠던 데다 총명하고 쾌활해 입체파 화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몽마르트르의 뮤즈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사랑, 꿈, 예술에 대한 탐구

로랑생은 아틀리에 세탁선 활동 시절, 피카소의 소개로 연인 기욤 아폴리네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둘은 열렬히 사랑하였고, 예술적 영감을 주고 받았습니다. 앙리 루소는 기욤의 부탁을 받아 이 연인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시인인 기욤 아폴리네르는 깃털 펜과 종이를 들고 있고, 마리 로랑생은 튼튼한 체구에 자신감 넘치는 포즈로 서 있습니다. (마리 로랑생은 이 그림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

앙리 루소가 그린 마리 로랑생과 기욤 아폴리네르 연인의 초상, The Muse Inspiring the Poet  (1909) by Henri Rousseau



로랑생은 그와의 교제 이후 검은색과 흰색이 주를 이루던 우울한 화풍에서 벗어나 색감이 밝고 화사한 그림을 선보이게 됩니다. 연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유명한 시,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의 주인공이 마리 로랑생임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기대가 높은 만큼 불안과 스트레스가 깊어져 결국 5년간의 연애는 막을 내립니다.
서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지만, 서로를 대신할 만한 사랑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진통제(La Calmant)

권태보다 더한 것은 슬픔
슬프기보다 더 아픈 것은 비참한 것
비참하기보다 더한 것은 괴로움
괴로움보다 심한 것은 버림받는 것
버림받기보다 심한 것은 외로움
외롭기보다 떠도는 것이
떠돎보다는 죽는 것이
그리고 죽기보다 더 아픈 건 잊혀진다는 것.





이것은 로랑생이 쓴 진통제라는 시입니다.

그녀의 연인이었던 기욤 아폴리네르도 그 유명한 [미라보 다리]라는 시를 통해 로랑생과의 결별을 아쉬워 합니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간다”

야수파와 입체파 사이에서 마리 로랑생만의 스타일을 찾다



20세기 초 파리 예술계는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19세기 중반부터 고전 미술에 대한 인상의의 저항이 시작된 이후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20세기 초 현대 미술계는 브라크, 피카소로 대표되는 입체파, 마티스, 드랭으로 대표되는 야수파가 주류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아직 여성 화가의 위치가 미미하던 시절, 마리 로랑생은 책의 삽화, 발레 공연의 무대 장치, 벽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점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스페인 무용수들>로 마리 로랑생만의 스타일을 찾아갑니다.

스페인 무용수들, Spanish Dancers 1921



The Dance 1921




로랑생은 회색, 녹색, 핑크등을 조화롭게 사용하며 파스텔 색조로 우아하면서도 꿈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탁월한 실력을 보였습니다. 파스텔 톤의 색감과 여성, 자연, 동물이 주로 등장하는 몽환적인 스타일을 만들어갑니다.


그녀는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스페인에 망명했을 당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작품에 핑크색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연인이었던 아폴리네르의 결혼 소식과 곧 이어 사망 소식을 듣고 난 뒤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는데, 이 당시 작품에서 코랄 핑크색을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이렇듯 시대적, 개인적 우울감을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작품에 핑크 컬러를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예술가들 사이에서 '핑크 레이디'로 불렸으며 1910~1930년대 프랑스 파리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치며 '예술가들의 예술가'라 불렸습니다.

인기있는 초상화 화가

로랑생의 화사하고 온화한 그림 스타일은 당시 파리 사교계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아 초상화 주문으로 이어집니다.
이 중 헬레나 루빈스타인, 폴 기욤의 부인과 샤넬도 있었습니다.
폴 기욤 부인은 화사한 꽃, 강아지, 핑크색 드레스 그리고 온화한 표정으로 표현된 자신의 초상화를 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

폴 기욤의 초상화,&amp;nbsp;Portrait de Madame Paul Guillaume, 1924


그러나 그녀가 그린 샤넬의 초상화 속 샤넬은 우울해 보입니다. 샤넬의 무릎위에 올라 앉은 강아지마저도 우울한 표정입니다.
샤넬은 자신의 모습을 수정하도록 요구하지만 로랑생은 이를 거부합니다. 샤넬은 그림을 가져가는 것을 거부했고, 그래서 이 그림은 로랑생이 평생 소장하게 됩니다. 이후 샤넬의 초상화는 화상 폴 기욤의 컬렉션이 되었고, 그의 유언에 따라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 기증됩니다. 현재 오랑주리 미술관에는 <마드모아젤 샤넬의 초상화>와 <폴 기욤 부인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있습니다.

마리로랑생이 그린 샤넬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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