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온몸 구석구석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적인 여인의 한이 서려 있나 봐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슬픈 전설의 이야기는 지워지지 않아요.
천경자 1924~2015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다
천경자는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현 도쿄여자미술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그 시절 천경자가 유학을 결심하자 아버지는 크게 반대했고, 그러자 그녀는 사흘 밤낮을 미친 여자처럼 울었다 웃었다를 반복했다고 합니다. 이에 두손 두발 다든 아버지는 그녀를 일본으로 보내게 됩니다.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화과에 입학하면서 본명 천옥자에서 천경자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1943년 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 1944년 연이어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화가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1946년 모교인 전남여고에 미술교사로 부임하게 됩니다. 1949년 서울에서 개인전을 치르면서 장래가 촉망되는 여류화가라는 평가를 받았고 조선대학교 미술과 강사로 임용되었습니다. 그녀는 전통적인 한국화의 범위를 확장하여 자전적인 주제와 화려한 채색기법으로 독자적인 양식을 확립하였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화단에서 입지를 다지다
이제 막 화단에 발을 디딘 그녀는 당시 가세가 기운 집안을 이끌어야 하는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설상 가상으로 동생의 죽음, 이로 인한 슬픔과 삶의 역경, 전쟁으로 인한 피로감,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다는 자책감 등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극복하기 위해 그녀는 자학적인 심정을 담아 똬리를 틀고 서로 꼬여 꿈틀거리는 뱀 그림을 그렸습니다. 당시 사귀었던 유부남이 뱀띠였고, 그의 나이 45세에 맞추어 45마리의 뱀을 그려넣었다고 합니다.
<생태>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이 그림으로 천경자는 한단계 더 도약하는 발판을 다지게 됩니다. 천경자는 화려한 듯 오싹한, 혐오스럽지만 꿈틀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뱀과 자신을 동일 시 하려 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듯 서로 얽히고 설킨 뱀 그림은 조선 화단에 큰 이슈가 되었고 특히 과감한 주제로 여성화가가 그렸다고 해서 더 큰 충격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그림을 발표 한 뒤 그녀는 1954년 홍익대 미대 동양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자신만의 스타일로 한국화를 모색해 나갔고, 1963년 도쿄 개인전을 열어 일본에도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자아의 발견, 관능적인 여인의 초상
1969년부터 8개월동안 천경자는 첫 해외여행을 떠나 미국, 사모아, 타히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을 여행했습니다. 이 여행을 통해 그동안 상처받은 ‘자아’를 보듬게 되고, 그동안 끝내지 못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끊어내기로 합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유부남’과의 사랑을 끝내고 홍익대학교 교수직도 사임한 뒤 작품 제작에만 전념합니다. 이 무렵 천경자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슬픈 듯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들을 주로 제작하여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확립하였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해외 여행 이후 그녀의 그림에는 전통 한국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풍취를 담은 소재들이 등장합니다. 또 과슈와 같은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여 전통적인 한국화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시도했습니다. 추상화가 주류로 떠오를 때에도 그녀만의 독자적인 구상화 양식을 구축해 나갑니다. 특히 그녀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그녀가 유부남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독립 선언’을 한 뒤 더욱더 저항적이며 관능적인 자의식이 가득찬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그 시대 여성들이 받았던 억압, 차별 등을 스스로 극복하려는 의지를 화려하고 관능적인 여인의 모습으로 담아냈습니다.
1991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위작 논란이 발생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인 「미인도」를 둘러싸고 작가가 이건 내 그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국가에서는 진품이라고 결론내렸고, 이 사건을 계기로 그녀는 절필을 선언하고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하였습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1995년 호암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습니다. 1998년 서울시에 작품 93점을 기증하면서 서울시립미술관에 ‘천경자 상설전시실’이 설치되었고, 2002년 서울시립미술관 신축개관 기념전으로 ‘천경자의 혼’이 개최되었습니다. 2015년 미국에서 타계하였으며 그 이후로도 상속과 관련된 유족들의 법정 공방이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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