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저 그녀의 모습대로 그렸을 뿐
John Singer Sargent
1865~1925
미국 출신의 영국 인상파 화가
사전트는 외과의사 아버지, 아마추어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평생을 풍족하게 살았습니다. 미국 화가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미국인 부모 밑에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며 생애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냈습니다. 사전트는 유럽 각국을 여행하며 문화적, 예술적 견문을 넓혀 나갔습니다.
파리의 공립 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 Ecole des Beaux-Arts에 입학하였고, 파리에서 당시 유명한 초상화가였던 에밀 오귀스트 카롤뤼 뒤랑에게 개인교습을 받았습니다. 모네가 살고 있는 지베르니Giverny에도 여러 번 방문하며 인상주의 화풍을 깊게 연구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전트는 스페인으로 떠난 여행에서 안달루시아 지방의 플라멩고를 보고 큰 인상을 받습니다. 파리로 돌아와 무려 3년 동안 플라멩고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고, 이 그림으로 파리 살롱전salon de paris에 입상하였습니다.
1889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의 훈장인 레지옹도뇌르 Legion d’Honneur를 받았으며, 마담X 스캔들 이후 건너간 영국에서도 인기를 얻어 기사 작위를 제의받기도 하고, 미국에서도 대통령의 초상을 의뢰받는 등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그는 살아 생전에 예술적 성공을 성취한 행운의 화가였습니다.
초상화의 대가, 그리고 마담 X
사전트가 그리는 초상화는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영국의 귀족, 미국의 대통령, 세계의 백만 장자들까지 초상화 주문이 밀려들었습니다.
1883년부터 2년간 그는 당시 파리 사교계에서 아름답다고 소문 난 고트로 부인의 초상을 그렸습니다. 그녀는 미국 뉴올리언스 출신으로 당시 화가들이 서로 초상화를 그리고 싶어하는 사교계의 여왕이었습니다. 파리 살롱전에 출시전부터 소문이 무성했던 그녀의 초상은 마담 X(Madame x)라는 작품명으로 출품됩니다. 창백하게 빛나는 피부와 어깨에서 흘러내린 드레스 끈에서 풍기는 뇌쇄적인 분위기로 미국 출신의 화가와 미국 출신 사교계 여성에 대한 파리 사회의 악평이 쏟아졌습니다. 당시 하얀 피부가 인기의 비결이었는데 미국 출신의 고트로 부인에 대한 시기 질투가 더해져 퇴폐적이고 외설적이라는 혹평을 아끼지 않았고, 사람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가십지에는 "사전트같은 미국인 화가들, 고트로 부인 같은 미국 출신의 여자들이 우리의 메달을 빼앗아가고 있다"라는 기사를 싣기도 했습니다.
결국 흘러내린 어깨끈을 고쳐 그렸지만 고트로 부인과 그녀의 가족은 이 그림을 매입하지 않았습니다. 사전트는 이 초상화를 자신의 걸작으로 아끼며 오랫 동안 화실에 보관하였습니다.사전트 사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이 그림을 구입하였고, 이 초상화는 지금까지 사전트의 대표작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사전트만의 독특한 스타일, 사전티즘(Sargentism)
<마담x> 그림으로 인한 논란으로 굴욕감과 분노를 느낀 사전트는 파리를 떠나 런던으로 이주합니다.
파리에서 영국으로 온 지 얼마 안된 1885년 여름, 그는 템스 강에서 보트타기를 즐기고 있었는데 다이빙을 하다가 머리를 크게 다치게 됩니다. 코츠월드의 한 마을로 치료를 하기 위해 실려 갔는데 그 곳은 젊은 화가들과 예술가들이 자주 모이던 곳이었습니다. 그 곳 정원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사전트는 그해부터 다음 해 가을까지 화가 친구의 딸들을 모델로 세우고 정원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초상화가로 유명세를 떨친 사전트가 그린 그림 중 걸작으로 꼽힌 그림이 이 곳에서 탄생하였습니다. 바로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이 그 그림입니다.
전원에 나가 직접 관찰하며 햇빛 아래에서 찰나의 순간들을 담아내는 인상파 화가들에게 야외 스케치는 필수였습니다. 사전트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해가 늬웃 늬웃 질 무렵 빛의 색과 온도를 담기 위해 미리 정원에 캔버스를 세팅해 좋고 그 찰나의 시간을 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워낙 짧은 시간에만 작업할 수 있어 2년에 걸쳐 그림을 완성하였습니다.
빛에 따라 변하는 대상의 모습을 포착한 인상주의의 성격과 풀과 꽃들의 사실적인 모습을 담았습니다 . 이를 인상주의와 사실주의가 결합된 사전트만의 독특한 스타일인 ‘사전티즘sargentism’이라고 부릅니다.
사전트는 다시 유명해졌고 런던에서 활동하지만 파리 살롱전에도 꾸준히 작품을 냈습니다. 프랑스, 영국, 미국에서 사랑받는 화가가 되었으며 미국은 보스턴 공공도서관 보스턴 미술관, 하버드 대학의 기념 도서관의 벽화를 의뢰받아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평생 900점의 유화, 2000점의 수채화를 비롯해 수많은 드로잉과 스케치를 남겼습니다.
'예술가 들여다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비스럽고 상징적인 오키프만의 화풍을 만들어낸, 조지아 오키프 (0) | 2022.11.13 |
---|---|
미술공예운동을 이끈, 윌리엄 모리스 (0) | 2022.11.13 |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으로 이국적인 세상을 그려낸, 앙리 루소 (0) | 2022.11.12 |
몽마르트르 물랭 루주의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0) | 2022.11.12 |
쓸쓸한 그림 속에서 나를 본다, 에드워드 호퍼 (0) | 2022.11.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