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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들여다보기

몽마르트르 물랭 루주의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by crystalpalace 2022. 11. 12.
“산다는 것은 충분히 슬픕니다. 그래서 그것을 사랑스럽고 즐겁게 나타내야 하지요.
그것을 그리기 위해서 푸른색과 붉은색 물감이 있는 것입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Henri de Toulouse Lautrec
1864~1901

 

유전병으로 기형적인 몸, 그림에서 탈출구를 찾다

툴루즈 로트레크는 백작 가문에서 태어나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로트레크는 태어날 때부터 뼈에 문제가 있었는데,  조상들의 근친혼으로 '농축 이골증’이라는 유전병을 갖고 태어난 탓이었습니다. 이 병은 작은 충격에도 뼈가 잘 부스러지고 키가 자라지 않아 평생을 조심히, 고통속에서 살아야 하는 병이었습니다.

그는 자라면서 사고까지 당해 두 다리가 부러졌고, 14세가 지나서는 지팡이 없이는 걷기 힘들 정도로 나빠졌습니다.  그 이후 상체만 크고 다리는 어린 시절 그대로 남아있어 152cm에서 키가 더 자라지 않았습니다. 로트레크의 아버지는 아들의 이러한 장애를 부끄러워 해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본인 역시 그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을 싫어했고, 낮에는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그림만 그렸습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예술 활동에 재능을 보였고, 어머니는 이런 그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습니다.

당시 파리의 거장 레옹 보나(Leon Bonnat)와 코르몽에게 교육을 받게 됩니다. 이후 1885년 몽마르트르에 정착하여 드가, 고흐와 친분을 통해 서로 강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물랭루주의 광고 포스터를 그리다

1889 에펠탑이 세워지던 해에 오픈한 물랭 루주Moulin Rouge는 빨간 풍차가 인상적인 외관과 함께 캉캉쇼로 몽마르트에서 가장 인기있는 댄스홀이었습니다. 여성이 발목을 보이는 것조차 꺼려지던 시절 속치마가 보이도록 힘차게 다리를 차올리는 댄서들을 볼 수 있는 이 곳은 금방 파리 사교계의 핫 플레이스가 되었습니다.가수 이브 몽땅과 에디트 피아프가 처음 만난 곳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이 곳에는 항상 ‘로트레크 이름으로 테이블이 하나 예약되어 있었습니다.  로트레크는 물랭 루주의 지배인과 계약을 맺고 매일 이곳에서 필요한 그림을 그려줄테니 매일 술을 마실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게 했습니다.

Moulin Rouge, La Goulue (1891)

로트레크는 물랭루주에서 매일 저녁을 보내며 광고 그림을 그렸고, 이는 상업 포스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밑바탕을 제공합니다.

19세기 유럽 미술이 일본 미술로부터 습득한 수법은 대상을 단순화해서 묘사함으써 더욱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법은 특히 광고 미술에 적합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로트렉은 절제된 회화 수단을 활용해 포스터라는 새로운 미술의 영역에 적용하였습니다.

그가 그린 포스터는 명확한 타이포그라피와 뚜렷한 이미지가 잘 조합되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이는 물랭 루주의 주인 요세프 올레르의 목표데로 물랭루주가 '사모님과 함께 즐기는 파리의 구경거리'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가 그린 물랭루주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여인 잔 아브릴 Jane Avril이 있습니다. 그녀는 관능적인 춤으로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고 로트레크는 아브릴이라는 배우에게 관심을 가지며 친구로서 늘 그 주변에 맴돌았습니다.

 

 

직업 여성들의 적나라한 삶을 그리다

로트렉은 상업적 포스터 이외에도 파리의 애환, 특히 직업 여성 무용수나 성매매 여성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그려냈습니다. 여인들의 누드와 여자 동성애를 다룬 석판화 작품들을 모아 그녀들(Elles)이라는 작품집을 1896년 발간합니다. 성매매에 대한 어떠한 치장 없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였습니다. 성병 검사를 위해 기다리는 성매매 여성들, 쉽게 잊혀지는 무명의 댄서 등 노골적이고 불편한 장면을 담아 비평가와 대중으로부터 비난을 샀습니다.

훗날 앙리의 동료 에두아르 비야르(Eduardo Vuillard)귀족적인 정신을 갖췄지만 신체에 결함이 있던 그에게 신체는 멀쩡했지만 도덕적으로 타락한 매춘부들이 묘한 동질감을 줬을 것이다라고 추측하기도 했습니다.

Rousse, dit aussi La Toilette (1889)

 

47도에 달하는 독주를 즐기던 로트레크는 심한 알코올 중독과 매독에 시달리다 35세에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그리고 37세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생전에 1300여점의 유화, 수채화, 일러스트, 5,000여점의 드로잉을 남겼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작품을 모아 로트레크가 태어난 고향인 알비Albi시에 기증했고, 1922년 로트레크 미술관이 개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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